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없어도 약물 투여는 상해가 될까요?
상해라는 말을 들으면 피가 나거나 뼈가 부러진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수면제나 약물로 의식을 잃었지만 몸에 상처가 남지 않은 사건에서는 “외상이 없으니 치상죄는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대법원은 상해를 눈에 보이는 손상으로만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 1.약물로 달라진 신체 상태를 봅니다
- 2.실제 판례는 커피에 넣은 졸피뎀을 다뤘습니다
- 3.항거불능과 상해는 같은 질문일까요?
- 4.외상이 없을 때 남길 수 있는 자료
- 5.상담은 의식이 끊긴 구간을 함부로 메우지 않습니다
- 6.약물 사건에서 판례가 말하지 않은 것
대법원 2017도3196 판결은 수면제나 약물을 투여해 피해자를 일시적으로 잠들게 하거나 의식을 잃게 한 경우에도 건강 상태가 나빠지고 생활 기능에 장애가 생겼다면 상해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피해자가 자연스럽게 깨어났거나 후유증이 없고 외부 상처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상해를 부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판결의 핵심은 약물을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에 자동으로 상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약물 투여로 생긴 상태가 단순한 졸림을 넘어 건강 악화와 생활 기능 침해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약의 종류와 양뿐 아니라 의식이 어떻게 변했고 정상적인 행동이 얼마나 불가능해졌는지가 중요합니다.

해당 사건에서 피고인은 졸피뎀 성분이 포함된 수면제를 성인 권장량을 넘겨 커피에 몰래 넣었습니다. 피해자는 커피를 마신 뒤 의식을 잃었고, 이후 간음 또는 추행이 이루어졌습니다. 법원은 피해자가 항거하기 어려운 상태였는지를 보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약물이 건강 상태를 악화시키고 생활 기능을 훼손한 정도라면 강간등상해·치상죄의 상해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실관계에서 ‘몰래 넣었다’, ‘권장량을 넘겼다’, ‘의식을 잃었다’는 사정은 서로 연결됩니다. 어느 한 표현만 일반화해서 모든 약물 사건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약물의 영향과 의식 변화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어야 판례의 판단 이유를 현재 사건에 대입할 수 있습니다.
법률사무소 니케의 성범죄변호사는 외상 사진의 유무보다 약물 섭취부터 의식 변화, 회복에 이르는 흐름을 자료와 진술로 재구성합니다.

독자께 “의식을 잃었다면 준강간의 항거불능과 상해가 한꺼번에 인정되는 것일까요?”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두 쟁점은 관련되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의식을 잃은 상태는 성적 행위에 저항하기 어려웠는지를 설명할 수 있고, 동시에 약물로 건강과 생활 기능이 침해되었는지를 살피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법적 질문에 맞춰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판례도 단순히 항거하기 어려웠으니 상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약물 투여가 항거불능을 만든 수준을 넘어 건강 악화와 생활 기능 장애를 일으켰는지 살폈습니다. 따라서 진술을 할 때에도 ‘기억이 없다’는 결론 외에 음료의 맛이나 냄새, 마신 양, 몸의 변화,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시점과 깨어난 뒤 상태를 가능한 범위에서 구체화해야 합니다.
피부 상처가 없으면 사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함께 있던 사람과 나눈 연락, 갑작스럽게 연락이 끊긴 시간, 깨어난 뒤 보낸 메시지, 진료와 검사 기록처럼 의식 변화 전후를 보여 주는 자료가 중요해집니다. 다만 기억나지 않는 구간을 추측으로 채우면 안 됩니다. 확인되는 사실과 타인의 설명, 본인이 추론한 내용을 분리해야 합니다.
혐의를 받는 쪽도 “상처가 없다”는 주장에 머물러서는 곤란합니다. 약물의 존재와 투여 경위, 실제 복용량, 의식 변화의 정도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판례가 외부 상처를 필수 조건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로 사실관계를 점검해야 합니다.
형법 제301조의 강간 등 상해·치상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집니다. 법정형이 무거운 만큼 약물 사용과 건강 악화, 기본 성범죄 사이의 연결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사건을 설명할 때 기억이 없는 시간은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빈칸을 확신하는 말로 채우면 진술 전체의 정확성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는 본인이 직접 기억하는 장면, 기록으로 확인되는 시각, 다른 사람이 전한 내용을 서로 나누어 놓고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2017도3196 판결은 외상이 없으면 상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바로잡았지만, 어떤 약물이 조금이라도 검출되면 무조건 상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약물 복용 사실만으로 간음이나 추행이 있었다고 인정한 것도 아닙니다. 약물의 신체 영향과 성적 행위의 존재는 각각 자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검사 결과가 있다면 검출 사실의 의미와 실제 의식 상태를 섞지 않아야 합니다. 검사 시점과 사건 시점 사이의 간격, 커피를 마신 뒤 나타난 변화, 자연스럽게 깨어난 과정이 사건 흐름 속에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검사 결과가 없더라도 다른 자료로 상태를 살필 수 있지만, 그 한계를 솔직하게 두어야 합니다.
특히 피해자의 기억이 끊긴 사건에서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결론을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확인되는 부분은 단단히 정리하고, 확인되지 않는 부분은 기록과 다른 진술로 검증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약물을 누가 어떻게 제공했는지를 가능한 한 빠르게 정리해야 합니다. 컵이나 포장, 결제 내역처럼 남아 있는 물건과 기록은 임의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혐의를 받는 입장에서도 관련 메시지를 골라 삭제하거나 약의 출처를 뒤늦게 맞추려 해서는 안 됩니다.
상담에서 변호사가 모든 빈칸을 채워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 현재 확인되는 것과 확인되지 않는 것을 나눠 제시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판례의 기준은 사실을 평가하는 틀이며,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만들어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대한변호사협회 형사전문 인증을 받은 김민수 변호사는 실제 살인사건, 폭행치사 사건과 성범죄 사건을 직접 수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선임을 결정할 때에는 이름뿐 아니라 유사 성범죄를 직접 맡은 경험과 초기 조사 전 자료 검토 방식을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사건 경위와 진술, 약물 및 의료자료를 지참해 구체적인 상담을 받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