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른이 맞는가?


나는 어른이 맞나? 도대체 언제부터 어른이 되는걸까?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제대로 당했다.

직원이 기계를 보여주겠다며 박스를 뜯더니, 봉인 실이 열렸으니 무조건 사야 한다고 했다. 이제 막 대학교 1학년이 된 나는 그 말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도 몰랐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폰을 샀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버지에게 한 소리 들었다. 심지어 그 대리점 직원은 "스무 살이나 먹고 그것도 모르냐"며 핀잔까지 얹었다.

지금 생각하면 절로 욕이 나온다.

 

법도, 세간의 시선도, 스무 살을 성인으로 본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마흔 중반에 들어서고, 10년 넘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상담을 해오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스무 살에서 서른 살 사이의 사람들은, 여전히 너무나 어리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혼자 계약할 수 있는 나이일 뿐, 실제로 상황을 판단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능력은 현저히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큰 사건이 터졌을 때 혼자 오는 젊은 의뢰인에게 부모님과 함께 상담받으러 오길 권유하는 편이다. 작은 건이야 처리하고 나면 그만이지만, 큰 사건은 서른도 채 안 된 사람이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나만의 것도 아닌 것 같다. 예전에는 스무 살 미만의 미성년자에게만 가족의 지지와 교육, 감독이 있었다는 점을 변론에 활용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른 미만의 청년 중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경우라면, 미성년자에 준하는 논리로 변론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법원의 양형 조사 역시 이런 부분을 함께 점수화한다. 내 생각이 아주 틀리지만은 않다는 방증이고, 실제로 이 변론이 꽤 힘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스물일곱 살 청년이 오토바이 사고를 내는 사건이 있었다.

직업상 전과를 남기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의견서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탄원서를 직접 제출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섰고, 사건 당사자의 어머니와 함께 머리를 맞대어 문구를 다듬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글에서 방향의 실마리를 얻었다.

 

탄원서에는 이런 내용을 담았다.

저는 어머니란 존재는 아이를 만나는 순간이 곧 아이를 떠나보내는 순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젖을 떼고, 기저귀를 떼고, 혼자 걸음마를 떼어주며, 이제 혼자 걸을 수 있겠다 싶은 순간 품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그것이 아이를 강하게, 건강하게 키우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제가 생각하던 시절과 너무 달라져 있었고,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아직 보살핌과 훈육이 필요한 아이를 다 자랐다고 착각하여 세상에 내보낸 것이, 이토록 큰 사고로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이번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아이를 제대로 다독여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겠습니다. 어미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다행히 그 마음이 닿았는지, 사건은 선처로 마무리되었다. 전과 없이.

스물일곱이나 된 청년이, 결국 어머니의 손을 빌려 날개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지금 어른이 맞나 싶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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